실연의 스누폴로지
곽비누 작가/감독의 개인전 ‘ZERO-BASE’를 보고
남선우 (씨네21 기자)
문이 열린 곳에 방이 있다. 손잡이를 돌려야 안이 보인다. 벽이 세워져서 바깥과 구분된다. 사람의 마음 혹은 머릿속처럼 단장한 장소. 곽비누 작가의 첫 개인전 ‘ZERO-BASE’는 거기에 있었다. 2022년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서울시 수유동의 콜드슬립(koldsleep)은 곧 곽비누 작가가 만든 한 캐릭터의 방이었다. 작가는 방의 주인을 ‘영’이라 소개했다.
책장과 책상, 창문과 식물이 있는 한 사람의 자리. 그곳은 그 자체로 그의 집이 되는 원룸일 수도 있고, 다른 구성원들과 같이 사는 주택의 개인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닌 목적이다. 곽비누는 왜 누군가의 흔적을 테두리로 두른 후 작품을 선보이는 걸까. 그것은 관음에의 권유와 어떻게 다른가. 초대에 응한 관람객은 짧은 영화에 더해 전시물로 분한 책과 메모, 사진과 푸티지를 살피며 답을 찾아가야 한다.
감정의 베이스캠프에서
곽비누 작가의 첫 개인전 ‘ZERO-BASE’는 단편영화 <여름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나면 그 후에 우리는 대체>(이하 <여름밤>)를 상영하기 위해 출발한 전시다. “준비하는 데 두 달, 찍는 건 하루, 편집하는 데는 꼬박 반년이 넘게” ¹ 걸렸다는 이 8분 10초짜리 영상은 “실재하는 방이지만, 관념의 영역” ² 에 가까운 ‘ZERO-BASE’의 중심에 있다. 어쩌면 <여름밤>의 앞뒤양옆을 다른 텍스트들이 둘러싸면서, 사연에 그칠 수 있었던 <여름밤>을 사건으로 승격시켜 전달하는 게 ‘ZERO-BASE’의 일인지 모른다. 전시실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아이맥을 포함해 총 여섯 개의 스폿이 마련되었다. 구석에 볕과 물이 있는 한 성장을 멈추지 않을 플로럴 아트 작품 <술래잡기>가, 한 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 서가에는 <I'm not a cinephile>이라는 제목의 영화감상문 내지는 일기를 읽을 수 있는 아이패드와 함께 영이 쌓아온 ‘감수성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10권의 책이 세워져 있다. 각 도서에는 책갈피마냥 사진이 한 장씩 끼워졌는데, 뒷면에 적힌 한두 줄의 문장이 영의 심경을 대변한다. 이 메모들은 이미 쓰인 책에 대한 응답 같기도, 책이 되지 못한 물음 같기도 하다.
여섯 개의 스폿 사이에서, 관람객은 퍽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다. 작가는 입구에 선 관람객에게 손전등을 쥐어줄 뿐이다. 이 빛을 무시하고 영화를 먼저 재생해도, 곧장 책을 뒤적여도 괜찮다. 빛을 벽에 비춰보며 위아래로 줄기를 늘인 꽃에 그림자를 더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로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텍스트의 생산자로 제시되는 인물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여름밤>을 보고 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여름밤>은 그 제목처럼 두 여자가 술을 홀짝이고 담배를 피우며 나누는 대화를 들려주는 영화다. 방의 주인인 영 옆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다른 여자의 이름은 ‘미지.’ 가쿠다 미쓰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마이즈미 리키야 감독의 <사랑이 뭘까> 속 관계망을 입에 올리며, 영과 미지는 연애를 주제로 한 수다를 떤다. 영이 미지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관객이 알아채기까지는 금방이다. 시선의 균형은 자주 허물어지고, 불안은 단지 한쪽의 몫인 걸로 보인다. 마침내 미지에게 ‘♥’의 전화가 걸려오면 희미하던 실연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영이 날려 보내야 하는 것은 담배 연기뿐이 아니게 된다. 흑백의 흡연 신(scene) 이후 꽁초는 마지막 숨을 뱉듯 명멸하며 엔딩을 장식한다. 그 호흡은 미지를 향한 영의 미련, 후회, 애증과도 다르지 않지만 무엇보다 끝나야 하는 짝사랑에 부치는 애도를 대신한다. 화면이 꺼지면 관람객은 끄덕이게 된다. ‘ZERO-BASE’는 <여름밤>이 운반하는 영화적 경험을 공간으로 확장해 감정이 머물다갈 장소로 승화한 결과다.
결말이거나 결말이 아닌
‘ZERO-BASE’는 그 감정이 영의 소유라고 설정한 동시에 관람객에게 전이하려 한다. 관계가 좌절된 적이 있다면, 애정이 중단되어야 한 적이 있다면 관람객은 영의 조각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때 관람객이 떠올릴 법한 대상이 꼭 연인일 필요는 없다. 8편의 영화에 대한 노트에 붙은 <I'm not a cinephile>이라는 항변, 8분의 설치 영상 <~~~>에 흐르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오가는 풍경들. 그것들이 재현하는 기억은 미지와 관련된 영의 사적인 체험들이지만, 영의 가족, 과거, 꿈, 희망, 절망을 짐작케 하는 단서들을 내포한다.
“버지니아 울프 전집은 내 친구가 열성적인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녀의 영문학 수업 교재일 뿐일까? 술에 취해 흥겨운 모습을 담은 사진은 그녀가 음주를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파티를 즐겼던 것뿐일까?” ³ 영의 방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심리학자 샘 고슬링이 ‘침실 연구’로써 던진 질문을 똑같이 시도하게 한다. 주디스 버틀러, 수전 팔루디, 마사 누스바움 그리고 『보스턴 결혼』. 영의 책장은 영이 사유 이상의 실천을 고려 중이었다고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녜스 바르다의 말』과 『밝은 방』, 『에쿠우스』와 『세계연극사』는 영의 영혼이 속해 있(기를 원하)는 무대를 암시하는 것만 같고. 방 한 편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화분(<술래잡기>)은 외로움을 타는 영이 때로 얼마나 부주의해질 수 있는지 증명하는 듯하다. 미지에 대한 마음을 키우고 방치했던 것처럼 말이다. 샘 고슬링은 한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그의 생활 장소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또는 그 방법을 ‘스눕’(Snoop)이라 칭했다. 개인의 행동 양식이 남긴 잔여물(Behavioral Residue)을 통해 개인의 성격, 생활 패턴 등을 알아가는 것이다. 고슬링의 연구는 납득할 만한 일련의 성과로 묶여 스눕과 심리학(Psychology)의 합성어인 ‘스누폴로지’(Snoopology)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물론 몽테뉴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춤을 출 때 춤만 춘다.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 그리고 아름다운 과수원을 홀로 거닐다가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내 생각을 바로잡아 다시 그 과수원에서의 산책으로, 그 고독의 감미로움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돌려놓는다.” ⁴ 잡념에 방해받지 않고 행위에 충실해져야 존재로서 온전함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진 이에게 연인은 절대적이다. 춤을 출 때도, 잠을 잘 때도, 과수원을 거닐 때도 그 사람으로 맘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관람객도 그 사실을 전제하고 영의 방을 누비지 않았나. 그래서 영은 어떤 선택을 할 인물인가. 작가는 ‘ZERO-BASE’에서 <여름밤> 감상과 스눕을 마친 관람객에게 직접 결말을 고를 기회를 내준다. 보기는 세 가지다. ‘1) 영화 속 여름밤이 오기 전에 미지에게 고백한다.’, ‘2) 영화 속 여름밤 이후 미지에게 고백한다.’, ‘3)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고백하지 않는다.’
멀티버스를 연상케 하는 이 인터랙티브 아트는 곽비누가 쓴 “<여름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나면 그 후에 우리는 대체>의 결말이거나 결말이 아닌” 소설로 맺는다. 당연히 소설은 세 편이고, 관람객은 자신이 택한 결말만의 독자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영과 미지가 그런 것처럼, 관람객에게 담배를 권한다. 흡연을 하지 않는 관람객은 어쩔 수 없겠지만 흡연자는 이로써 비로소 영이 뱉은 숨을 따라 쉴 수 있다. ‘결말이거나 결말이 아닌’ 순간의 창출. 어찌되었든 홀로 남겨지는 것. 누군가의 방을, 그것도 비밀 일기일지 모를 자취를 훑었다는 관람객의 (일말의) 죄책감은 영과의 동일시를 거쳐 스멀스멀 누그러진다. 아마도 실연의 스누폴로지를 성실히 수행한 관람객만이 누릴 수 있는 (일말의) 가벼움이 아닐까. 영이 다음에 도착할 ‘미지’의 땅은 이전보다 덜 축축하길 바라며, 우리는 각기 다른 무게의 문을 닫는다.
1. 곽비누, 「작가의 말」, 『ZERO-BASE 팸플릿』, 2022.
2. 곽비누, 「작가의 말」, 『ZERO-BASE 팸플릿』, 2022.
3. 샘 고슬링, 김선아 옮김, 『스눕』, 한국경제신문, 2010, p.16.
4.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안해린 옮김, 『몽테뉴의 수상록』, 메이트북스, 2019,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