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사람들

<귀를 기울이면>, 1995, 콘도 요시후미

내가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건 이십대 중반 쯤이었다. 어릴 때 읽었던 자기계발서는 나를 하버드로 보내거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도록 했다. 현실은 어땠나? 나는 신촌 하이트잭에서 밤새 토하는 친구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남들도 걸었던 지도를 맹목적으로 따랐다. 나이가 든다는 건 스스로가 별볼일 없음을 순순히 인정하는 일 같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뭐가 하고 싶었는지, 있었다면 그게 왜 하고 싶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이와 같은 과정이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때론 이런 증상이 일종의 감각 마비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못 베겼던 그 열정이, 진정으로 이루고자 했던 그 마음이, 내 안에도 무언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그 믿음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영화는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무엇에? 아마도 그건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시즈쿠는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책을 빌려 보는 사람이 궁금하다. 한편, 볼 때마다 자신을 놀리는 남자 아이를 만난다. 알고 보니(당연히) 자신이 궁금해하던 환상 속의 그 사람과 남자 아이는 동일 인물이다. 시즈쿠가 만든 ‘컨트리 로드'를 함께 부르고 연주한 날,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바이올린을 향한 세이지의 열정은 시즈쿠의 열정을 깨운다. 무언가에 열중해 본 사람은 밤을 새 소설을 쓰는 시즈쿠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될지도 모른다. 시즈쿠의 열정이 당신의 열정을 깨웠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빛난다. 그 빛을 되찾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일단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X는 우리가 영화를 좋아해서 자신도 영화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귀를 기울인다는 건 어쩌면 마음을 쓰는 일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