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를 뿐 끝나지 않는다

<만추>, 2010, 김태용

여자는 표정이 없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건 속을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 이야기가 시애틀에서 벌어지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얼굴도 마음도 감추기 좋은 도시.

애나는 사흘 간 원치 않았던 휴가를 얻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7년 동안 복역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사형수로 휴가를 나온 건 네가 처음이라는 말을 건네거나, 당장 집을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 애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만난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한 상처가 여전한데, 그 남자는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군다. 애나의 표정은 이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 애나에게 훈이 돈을 빌린 이유는 애나가 자신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다. 웃지 않았다는 애나를 에스코트하는 훈. 애나는 훈과 시간을 보내며 저도 모르게 점점 표정을 되찾는다. 놀이공원에서 상황극을 하거나, 그게 부끄러워 한참을 뛰거나, 유령 관광 중인 사람들과 만나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장례식에서는 상황이 더 극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훈은 애나의 첫사랑과 다툰다. (재미있는 것은 훈이 애나의 사정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싸운 이유는 그 남자가 자신의 포크를 썼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 애나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김 없이 모두 쏟아낸다. 시종일관 안개로 흐릿해 보이던 화면도 이때는 어쩐지 선명하다. 왜 그랬어요, 왜. 왜 저 사람 포크를 썼어요. 왜 사과도 하지 않아요. 왜. 그 질문이 포크 때문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왜 그때 도망쳤나요. 왜 그때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요. 그래놓고 왜 내게 미안해하지도 않나요. 왜.

영화에서 훈은 애나에게 거듭 시계를 준다. 돈을 빌렸다는 이유로, 기념이라는 이유로. 이 영화가 시간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탓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시간에 쫓기는 두 사람이 잠시 함께한 그 늦가을, 그 사흘이 바로 <만추>다. 중국에서는 연인 사이에 시계를 잘 선물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계를 뜻하는 발음(钟 zhōng)과 끝난다(终 zhōng)는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 못 했을 것 같다. 그러면 뭐 어떤가. 애나가 다시 웃는데.

모임 중 누군가가 훈과 애나가 처음 만난 순간을 돌려 보았으며, 실제로 애나는 웃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덧붙였다. 실제로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아마 두 사람은 평생 '첫 만남에 애나가 웃어서 훈이 돈을 빌렸었지.'라고 추억할 것이라고. 뿌연 안개 속에서 어떤 가을은 그렇게 미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