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면서 몇 개의 남색대문을 지나갈까. 멍커로우는 위에전을 좋아하고, 위에전은 장시하오를 좋아한다. 사랑의 방향이야 어쨌든 멍커로우는 위에전을 위해 뭐든 한다. 편지도 대신 전해 주고 모욕도 대신 당한다. 장시하오의 역할까지 대신한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의 얼굴을 쓰고 위에전과 춤춘다. 서로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두 사람의 마음은 시끄럽다. 위에전은 장시하오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물건을 모아 놓고 사랑에 빠지기를 바란다. 그 주술 같은 짝사랑에 동조하는 멍커로우의 마음은 어지럽다. 하나도 모르고 사랑에 빠지는 위에전과 전부 다 알아서 사랑에 빠진 멍커로우. 이 바보 같은 어린 양들을 어쩌면 좋을까.
그런 멍커로우의 순정을 알아서였을지. 알아본 것인지. 장시하오는 질투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멍커로우에게 한눈에 반한다. 오프닝 시퀀스, 멍커로우의 어깨 너머로 걸리는 진백림의 미소는 결말을 알고 보면 어쩐지 마음이 아려온다. 무성한 초록, 모든 것을 불태울듯 살벌하고도 찬란한 여름. 첫사랑은 왜 그리도 어려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좋아하는 그 애가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것뿐인데. 그 시절 우리는 그 애를 좋아하는 너를 좋아한다. 카메라가 시종일관 어딘가에 숨어서 인물을 찍는 것은 그 복잡하게 감춰진 마음의 시선은 아니었을지. 입술을 맞춰 보지 않아도 심장이 어디로 뛰고 있는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누군가를 사랑하느라 나를 사랑하지 못하던 날에,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눈부시던 타이페이와 그 초록 아래서 멍커로우와 장시하오가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그 여름이 끝날 때쯤, 멍커로우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날, X는 첫사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디에선가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새삼 웃는 얼굴은 그 자체로 참 환하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