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2009, 이해준

남자 김 씨도, 여자 김 씨도 이 험난한 세상에서 표류한다. 그들은 각자의 섬에서 생존을 도모한다.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박희순과 정재영을 구분할 줄 모르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재영을 발견한다. 내가 그를 발견한 것처럼, 여자 김 씨도 밤섬에 사는 남자 김 씨를 찾아낸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두 사람은 안녕, 안녕, 인사를 나누고 HOW ARE YOU? 묻는다.
어떻게 지내. 잘 지내? 오늘 어때.
나는 왜 여자 김 씨가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받은 순간 울었을까.
이 영화는 아무도 없는 달에서보다 60억 지구에서 사는 게 외로운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외계인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런 당신에게 묻는다.
“HOW ARE YOU?”
우리는 정말 Fine, thank you. 한가?
산다는 건 때로 누군가 내게 괜찮냐고 묻는 것만으로도 fine해지기도 한다. 쉽게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몇 달 간 걸려 만들어 먹을 때 느끼는 희망으로, 죽기 전 죽을 만큼 달콤한 사루비아로, 그리고 멀리서 실려오는 누군가의 안부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날 이후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How are you?”라고 물었다. X는 가끔 “I’m lonely.”라고 말했다. And you? 돌아오는 대답에는 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