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은 언제부터 가족인가?
왜 아버지는 되어야만 하는가?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인가?
처음 봤을 때, 나는 이런 영화가 있어서 사는 게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때 나는 료타였다. (애초에 가부장에 이입했다니. 놀랍다.) 다시 보니 영화가 아이를 다루는 방식이 폭력적이다. 양측의 모부는 아이들에게 묻지 않는다. 아이들은 너무 어려 이 상황(자신들이 바꿔치기 당했다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낳아 주신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개념은 사실상 한 아이의 양육자가 된 이들에게나 중요해 보인다. 영화는 아이가 바뀐 료타와 유다이의 가족 말고도 다양한 가족을 보여 준다. 료타의 가족(아버지가 새어머니와 재혼하여 다른 어머니가 생긴 경우)과 아이를 바꾼 간호사의 가족(간호사가 재혼하며 남편의 아이들을 키우게 된 경우)은 모두 가족의 해체-재결합을 거치고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해체와 재결합의 양상은 달라도 가지각색의 사연 때문에 가족 되기가 참 어렵다는 점에서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감독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닮았니 닮지 않았니 하는 것은 아이와 연결돼 있지 않은 남자뿐이라고 말한다. 셀프 디스와 자기 PR을 동시에 하는 감독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제는 조금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파상으로 모든 가족이 들어갈 때, <어느 가족>의 태동을 느꼈다.
연주의 기획이라 나가게 된 영화 모임에서 본 첫 영화였다. 우리는 각자에게 있어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했다. 한 사람이 자신은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은 동시에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정을 가져 본 적 없기에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담고 있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불현듯 나는 왜 이렇게 자랐을까 궁금해진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이런 나를 바랐을까? 바라지 않은 모습이라 하더라도 줄곧 사랑해 주려나.